08-01-14 00:34
넓은 세상, 좁은 하늘
나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라는 책의 가장 말미에서 가장 의미 있는 구절을 발견한 적이 있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세계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몸부림친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바로 자신만의 세상에 갇혀서 모든 것을 판단하고, 더 이상의 도전도 노력도 하지 않은 그런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좌정관천(坐井觀天)이라는 [우물 속에 앉아 하늘을 본다는 뜻으로] ‘견문(見聞)이 썩 좁음’을 이르는 말입니다. 이 말은 고려 때 목은 이색이 중국에 들어가 과거에 급제 했을 때, 중국학자 구양현이 그를 조선의 변방사람이라고 무시하는 글에 대하여 답한 것이라는 고사가 있습니다.
獸蹄鳥迹之道 交於中國(수제조적지도 교어중국)
"짐승의 발자취와 새의 발자취가 어찌 중국에 와서 왕래하느냐?"라고 구양현이 글로 말하자
목은은 즉석에서 대답하기를,
犬吠鷄鳴之聲 達于四境(견폐계명지성 달우사경)
"개 짖고 닭 우는 소리가 사방에 들려오고 있다."이라고 목은이 답하여 구양현을 놀라게 했습니다.
구양현의 말을 해석하면 “짐승의 발자취와 새의 발자취가 어찌 중국에 와서 다니느냐? 고 함으로 고려 사람을 극도로 멸시하여, 너희들 새나 짐승 같은 것들이 어찌 감히 우리 중국 땅을 더럽히느냐”하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화답한 목은의 시가 더욱 묘합니다. 그는
“개 짖는 소리, 닭 우는 소리가 사방에 들려옵니다.”라고 말하여
“우리 고려를 새나 짐승으로 취급한다면, 당신네 중국은 역시 개나 닭이지 뭐냐”는 기막힌 풍자시를 들려주었던 것입니다.
이에 놀란 구양현은 기이하게 여기고 또 글 한 짝을 지어서 이색을 놀렸습니다.
持盃入海 知多海(지배입해 지다해)
"잔을 가지고 바다에 들어가니, 바다가 큰 줄 알겠더라."
목은은 또 즉석에서,
坐井觀天 曰小天(좌정관천 왈소천)
"우물에 앉아 하늘을 보고, 하늘을 작다고 하는도다."
하고 회답하니, 구양현은 크게 경탄하여 항복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세상을 두 종류의 사람으로 나눌 수 없겠지만 하나는 구양현처럼 자신이 가장 우월하다는 자기중심적인 우월감에 사로잡혀 다른 약자들을 돌보지 못하는 사람과 목은 이색처럼 시골 사람같고 변방의 사람으로 무시당하고 살지만 자기를 잘 준비해서 강한 사람을 부끄럽게 할 만한 사람 실력을 키워가는 두 번째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나는 사랑하는 밀알의 식구들에게 더 이상 좁은 자신만의 세계에 같혀서, 자신만을 뽐내는 어리석음을 자랑하지 말고 그저 못난 사람처럼 보일지라도 나의 미래를 위해서 더욱더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해서 그 결과를 세상에 펼치시기를 축복합니다.
[잠언16:18]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여러분을 사랑하는 종 한덕진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