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3-21 23:30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이웃이 보인다.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태복음 22:36-40)
흔히 ‘기독교를 상징하는 한 마디의 단어를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많은 사람들은 서슴없이 ‘사랑’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 사실은 이미 우리가 초등학교 때부터 교과서에서 배워올 만큼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것이다.
성경에는 이와 같은 질문을 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와 있다. 그 사람은 바로 성경을 가르치는 율법교사였다. 그는 예수님께 다가와 이렇게 묻는다.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큽니까?’ 이 질문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말씀을 통하여 아래와 같이 말씀하심으로 성경의 가장 중요한 단어를 단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게 하셨다.
먼저 가장 중요한 것은 창조주에 대한 사랑이다.
그리스도는 먼저 가장 중요하고 첫 번째 되는 계명은 ‘하나님 사랑’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서’ 해야 할 만큼 중요하고 무거운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단의 권세가 세상에 침입함으로 왜곡되어지고 삐뚤어진 창조세상 속에서 진정한 가치를 가진 사람으로 회복되기 위해서는 그 가치의 근본이 되신 하나님을 자신의 창조주로 인정하고 사랑할 때만이 세상 속에서 인간 본연의 모습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이웃에 대한 사랑이다.
두 번째 계명은 바로 이웃은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웃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할 존재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아닌 타인을 자기 자신과 같이 여기라는 주님의 말씀은 다른 성경구절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7:12] 내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하신 말씀은 곧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이 그에게도 가장 좋은 것이라는 가르침인 동시에 이웃을 사랑을 실천하는 자세로서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처럼 그들은 사랑하라는 말씀의 가르침인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계명은 하나의 계명이다.
오늘 날까지 교회는 하나님에 사랑을 우선하여 가르쳐왔고 또 그 가르침은 옳은 것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동안 많은 교회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면서 그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하나님의 또 다른 형상인 인간에 대한 사랑은 경하게 여겨왔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율법교사의 질문에 대하여 ‘사랑’이라는 한 단어로 성경 전체를 요약하면서 하나님 사랑과 더불어서 ‘둘째도 그와 같으니’라는 말씀을 통해서 이웃사랑이 하나님 사랑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고 계신다. 그래서 이 두 계명은 하나의 계명이요 지극히 큰 계명이 되는 것이다.
진정한 신자의 신앙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분리할 수 없다. 그 이웃은 오늘 날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임과 동시에 우리가 섬기는 장애인들에 대한 사랑도 포함하는 것이다. 다가오는 4월은 부활절이 있고, 또 장애인주일이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그 사랑을 빚진 우리는 우리 주변에 있는 장애인을 대함에 있어서 하나님을 대하듯이 대하는 진실한 이웃으로서의 사랑을 실천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