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섬김의 평안밀알복지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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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진목사
나는 이곳에서 참 좋은 한 목사님을 만나서 교제하고 있다. 이 목사님은 크롬병이라는 불치의 병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 병 때문에 몇 번이나 병원에서 수술을 해서 살아났고, 수천만원에 달하는 비싼 병원비를 내지 못해서 한 달에 몇 십 달러씩 값는 조건으로 병원을 퇴원 하곤 했다고 한다. 먹는 것은 그렇게 많이 드시는데 장에서는 영양분을 흡수하지 못해서 늘 삐쩍 말라 있었다. 언제 재발할지 모르는 두려움 때문에 늘 긴장을 해야하고 자기 관리를 해야하는 스트레스가 많이 있겠지만 그렇게 늘 감사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보기 좋은 분이다.
그런데 얼마 전 갑자기 이 목사님이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야기를 듣는 순간 크롬병이 재발했구나라고 생각을 하고 몇 일이 지나서 병원에 문병을 가 보았다. 그런데 이번에 그가 입원한 이유는 크롬병 때문이 아니라 다리에서 생기는 혈전 때문이었다. 병원에서는 혈전이 왜 생기는지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고 혈전이 계속 생기면 극단적인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말는 목사님과 가족들을 놀라게 했다. 처음 한 번 입원하고 퇴원할 때는 그래도 괜찮았다. 그런데 두 번째 입원을 했을 때는 본인을 포함해서 주변의 사람들이 깊이 기도하게 되었다. 알 수 없는 위기감이 모든 사람들을 짓눌러 버렸던 것이다.
이 목사님은 하나님의 은혜로 몸에 맞는 약을 찾아내서 퇴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가 지난 후 나는 잠시 그와 산책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 때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다시 한 번 느낄 수가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입원을 거듭하고 병에 대한 원인을 찾지 못하게 되면서 자신이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위기감을 가졌다고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하나님 크롬병만으로도 힘든데 거기에다기 이것까지는 너무 하신 것 아닙니까?’ 순간적으로 아내와 남겨질 가족들을 생각하며 마음이 늪으로 빠져들 때 아내가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보, 하나님이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불평과 불안이 업습했던 목사님의 마음은 순간적으로 녹아들었고 다시 평안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지금 자신의 몸을 가누지도 못하는 상황에서도 일하는 아내를 위해서 학교로 아이들을 태우러 다니고 사역을 위해서 기쁨으로 헌신하고 있다.
보통의 사람들에게 이런 상황은 분노와 공포, 그리고 원망이 그 마음을 사로잡기 마련이다. 그의 형편을 어렵고, 자신을 위해서 후원해줄 사람도 없고, 목회도 잘 되지 않고, 병원비를 낼 수도 없이 압박에 시달리고, 또 불치병에다가 또 원인을 알 수 없는 심각한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목사님의 마음에는 분노가 아닌 인내와 감사, 그리고 기쁨과 깊은 영성이 자리잡고 있다. 그 이유가 뭘까?
나는 극심한 장애를 가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왔다. 이들은 모두 심각한 장애를 가지고 있고, 세상으로부터 차별을 받고 있고, 그들을 위해서 봉사할 사람들도 많지 않으며, 경제적으로는 어렵고, 여러 가지 관계에서는 단절을 경험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누리는 일반적인 행복조차도 누릴 수 없는 경우가 아주 많이 있다. 과거 대학생들에게 장애체험을 하고 설문지에 당신이 이런 장애를 가지게 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라고 물은 적이 있다. 그 때 많은 학생들인 골방에 들어가서 세상과의 대화를 끊어버릴 것이라는 부분에 체크했었던 것을 기억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렇게 원망스러운 상황에 반응하는 방식은 두 가지 극단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한 부류의 사람들은 자신의 장애와 이로 인한 극심한 고통들이 기회가 돼서 오히려 남을 이해하고, 인내심이 깊어지고, 자신을 성찰하며, 깊은 영성을 소유하면서 긍정적으로 변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은 동일한 문제 때문에 자기 스스로가 지옥을 경험하고 세상에 대해서 불평과 원망을 하는 모습으로 변하는 사람들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사람들은 모두 이와 비슷한 일상들을 경험하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왜 이렇게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다를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결론은 그 사람이 결정한다는 것이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서 어떤 상황에 대해서 인내하고 참아내며, 감사하고 노래할지 아니면 원망하고 공격하고 불안해할지가 결정된다는 말이다. 환경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그 환경을 받아들이고 반응하는 것은 그 사람의 몫인 것이다. 원망한다고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 불안해한다고 세상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만 더 망가질 뿐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세상과 삶에 대해서 그렇게 대하곤 한다.
한 목사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나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본다. 내가 경험하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나를 나답게 만드시기 위해서 주시는 선물이라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던 것 같다. 만약 어느 순간에 나에게 이기지 못할 어려움이 다가온다면 원망을 넘어서 감사로 반응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해본다.
세상이 사람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세상을 결정한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로마서 5:3-4)
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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