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보시다시피 장애아동들이 학예회를 할라치면 교사들이 더 고생이다. 그럼에도 굳이 하는 이유는 장애아동들에게는 자신감을, 장애아부모들에게는 '편견깨기'를 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거리이기 때문이다. | ⓒ 푸른나무 어린이집 |
|
|
"우리 아이가 저렇게 예쁜 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경기도 안성 '푸른나무 어린이집(장애전담유치원, 원장 김혜선)'의 한 학부형이 학예회를 끝내고 울먹이면서 한 말이다. 자신의 아이는 스스로 아무것도 못할 줄 알았는데, 학예회를 해내는 걸 옆에서 지켜본 후였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조차 꺼렸던 지난날에 비하면 서로가 장족한 발전이다.
푸른나무 어린이집은 사회복지법인 평안밀복지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곳으로 장애아동의 경우 무상으로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이곳에서는 여느 어린이집과 같이 학예회를 연다. 사실 장애아동들이라 학예회를 한 번 할라치면 보통 번거로운 게 아니다. 의상 하나 갈아입히는 것도 어렵다. 무대로 이동하는 것도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장애아동보다 준비하는 교사들이 더 힘들어 보인다.
이런데도 굳이 학예회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 행사를 통해 장애아는 자존감을 회복하고, 부모는 자신의 아이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고, 관중들은 장애아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때문이다.
'장애아동 무상교육' 어린이집, 몰라서 못 오기도
|
▲ 장애아동들이 제일 좋아하는 물놀이다. 자원봉사자와 함께 신나는 여름캠프 물놀이를 하고 있다. 이런 접점들이 모여서 서로에게 변화를 가져온다. | ⓒ 푸른나무 어린이집 |
|
|
간혹 '장애아동으로 낙인찍히는 게 싫어서, 장애아동과 어울리면 장애가 더 심해질까봐, 일반아동과 어울려야 좀 더 나아질 것 같아서' 등의 이유로 이곳에 입학하는 것을 꺼리는 부모들이 있다. 심지어 자신의 아이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데 어디를 보내느냐는 부모도 있단다.
어떤 부모는 자신의 자녀가 장애아라는 걸 인정하기 싫어서 굳이 일반 어린이집으로 보내기도 한다. 실제 일반 어린이집에 다니며 배우는 것은 아이도 힘들고 부모도 어려움을 격지만 그럼에도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장애전담 유치원엔 보내지 않는단다.
어떤 경우는 경제적 여유가 없고 열악한 환경에 있다 보니 엄두를 못 내기도 한다. 너무 멀어서 못 오는 경우도 있다. 안성과 평택을 통틀어 장애전담 어린이집은 푸른나무 어린이집 단 한 곳 뿐이다. 거의 대다수가 이런 곳이 있는 줄도 몰라서 못 온다.
푸른나무 어린이집은 유치원 연령뿐만 아니라 만12세까지의 장애아동을 전담한다. 더불어 장애아만 다니는 게 아니라 장애아로 의심되는 아동들도 다닐 수 있다. 조기상담, 조기교육 등을 통해 장애가 진전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도 한다.
통합교육-자원봉사자들과 만남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
|
▲ 봉사자와 장애아동이 농촌체험을 함께 하며 신나게 웃고 있다. 김혜선 원장은 "일반아동이 이런 현장학습을 한 번 하면, 우리 친구들은 열 번, 스무 번 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강조했다. | ⓒ 푸른나무 어린이집 |
|
|
여기가 장애전담이라고 해서 통합교육(장애아와 일반아동이 함께 하는 교육)이 약하다고 봐선 안 된다. 2007년부터 일반 어린이집 아이들이 매주 이곳을 방문하고 있다. 처음엔 서먹서먹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일반아동들이 이 시간을 기다린단다.
침을 흘리는 장애아를 자연스레 손수건으로 닦아주는 아이들, 처음엔 이상하게 생각했다가 지금은 자연스러운 친구로 생각하는 아이들이 대다수다. 장애아보다 일반아동들의 변화가 눈에 띈단다. 잦은 만남이 자연스러운 변화를 이끌어내었다.
해마다 열리는 여름캠프에서도 장애아동과 일반아동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자원봉사 학생들과의 평소 만남도 잦다. 무엇보다 미용 봉사하는 자원봉사자와의 만남은 서로가 많은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미용실에 가서 이발조차 못하던 산만한 친구가 미용자원봉사자와의 잦은 만남으로 인해 달라졌다. 차분하게 미용실에 가서 이발을 하게 된 것이다.
"일단 자원봉사를 하고 나면 우리 친구들이 정말 예쁘게 보일 겁니다."
김혜선 원장의 확신에 찬 목소리다. 자원봉사를 하고나면 장애아에 대한 편견이 깨지는 것은 물론이고, 장애아가 사랑스럽다고 느끼는 수많은 사람을 그녀는 보았다.
"장애전담 어린이집, 아직은 절실해요"
|
▲ 푸른나무 어린이집의 김혜선 원장. 한사코 사진 촬영을 마다하는 그녀를 겨우 설득했다. 그녀는 자신을 내세우기 보다 이 인터뷰를 통해 어린이집 친구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을 강조했다. | ⓒ 송상호 |
|
|
요즘 통합교육(장애아동과 일반아동이 함께하는 교육)이 대세라고들 한다. 하지만, 김 원장의 생각은 다르다. 아직은 장애전담 시설이 절실하다고 본다. 통합교육을 훌륭히 치러내는 데 필요한 사회전반적인 의식이 약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선 보육뿐 아니라 특수치료와 교육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장애아동 3~4명를 교사 한 명이 담당한다. 실제로 원생이 48명인 이곳에 원장을 포함한 24명의 어른이 있다. 원생 2명에 어른 한 명이 감당하는 꼴이다. 일반 어린이집에선 상상도 못할 수준이다. 뿐만 아니라 여기엔 특수교육 전문교사, 물리치료사, 상담교사 등이 함께 하고 있다.
실제로 장애아를 둔 부모가 일반 어린이집에 입학시키려다가 매번 거절당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장애아를 받아주는 곳조차도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곤 하는데 한 사람에게만 신경 써줄 수 없는 집단의 성격 때문이다.
장애아동이 장애전담시설의 안정된 환경에서 내성을 길러 좀 더 탄탄해져야 세상을 살아갈 에너지가 생긴다고 그녀는 말한다. 사회로 무조건 나가면 한 번 다친 자존감을 회복하기 힘들다는 것. 자신이 뭔가 부족한 존재로 인식해 패배의식에 사로잡히기 십상이란다. "장애전담 어린이집이 필요하지 않은 수준의 사회가 속히 오기를 바란다"는 그녀의 말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푸른나무 어린이집', 거기엔 우리가 극복해야 할 것은 '장애'가 아니라 '편견'이라는 평범한 진실을 다시 한 번 더 생각나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도 장애아 한 명 한 명에게 세상을 살아나갈 에너지를 공급하는 '푸른 나무'가 자라고 있다. |